
2026. 10. 6. AM 10:34:17 · 조회 1
2019년, 경찰은 30년 넘게 보관해 온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증거물을 다시 꺼냈다.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지 오래였고, 그 증거물들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누군가를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 낡은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다시 보냈다. 33년 동안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이름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름이 공개됐을 때,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일대에서 이어진 10건의 연쇄살인 사건이다. 농촌 마을과 들판, 좁은 골목이 뒤섞인 지역에서 비슷한 수법의 범행이 반복되자 경찰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렸다. 당시 투입된 경찰 인력은 연인원 2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유력하다던 용의자들은 번번이 알리바이나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1991년 4월 마지막 사건을 끝으로 범행은 멈췄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건은 하나둘 공소시효를 맞았다. 당시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고, 2006년 4월 마지막 10차 사건마저 시효가 완성되면서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법적으로 더 이상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이 됐다. 봉준호 감독이 2003년 이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만들며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한 형사들의 무력감을 스크린에 옮겼을 때도, 실제 사건의 진범은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채,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제'로 기억됐다.
그런데 2019년, 경찰이 보관 중이던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다시 감정 의뢰한 결과 화성 사건 증거물 일부에서 DNA가 확인됐다. 이 DNA는 이미 다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이춘재의 것과 일치했다.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수감된 인물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이춘재에 대한 면담을 시작했다. 수사팀은 조급하게 다그치는 대신, 프로파일러와 함께 여러 차례 그를 만나며 설득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화성 사건 10건 가운데 단 한 건은 이미 범인이 잡혀 유죄가 확정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6일 발생한 8차 사건이었다. 윤성여 씨는 이듬해 이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년을 복역한 끝에 2009년 가석방됐다. 만약 이춘재가 진범이라면, 그동안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낸 그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수사팀이 DNA 감정 결과를 제시하며 면담을 이어가자 이춘재는 입을 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화성 사건 중 여러 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했고, 그 외에도 화성 인근과 청주 등지에서 있었던 몇 건의 살인·성폭행 사건까지 추가로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0월 1일, 경찰은 이춘재가 화성 사건 9건과 그 외 5건을 합쳐 모두 14건의 살인을 자백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33년 동안 묻혀 있던 이름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반전은 며칠 뒤에 이어졌다. 10월 4일 경찰은 이춘재가 8차 사건, 그러니까 윤성여 씨가 범인으로 지목돼 복역했던 바로 그 사건까지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진술까지 더해져 자백한 14건은 화성 사건 10건과 그 외 4건으로 정리됐다. 33년 만에 드러난 진실은 범인의 이름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2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수사기관은 이춘재가 아닌 윤성여 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유죄를 받아냈고, 윤성여 씨는 복역 후 가석방돼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 애쓰고 있었다. 윤성여 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당시 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적 파장은 단순한 '미제 사건 해결'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윤성여 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20년 12월 수원지방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과거 수사 과정에서 불법 체포·감금과 가혹행위가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얻어진 자백은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도 피해자들과 윤성여 씨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윤성여 씨는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2022년 11월 법원은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 25억여 원을 공제하고도 윤 씨와 가족에게 모두 21억7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무부는 같은 해 12월 항소를 포기했다. 그가 잃어버린 시간은 어떤 판결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그가 범인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법적으로 명확히 정리됐다.
정작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는 화성 사건들에 대해 추가로 기소되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됐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했다. 그는 기존에 선고받은 무기징역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수감 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음에도 법정에서 그 죄를 다시 묻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씁쓸함을 남겼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 문제는 이후 제도 논의와도 맞닿았다.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 개정, 이른바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됐다. 다만 이 법은 대구 황산테러 사건 피해자 김태완 군의 이름을 딴 것이고, 화성 사건은 이미 그 이전에 시효가 끝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30여 년 전, 들판과 골목에서 반복된 범행 앞에 경찰은 번번이 범인을 놓쳤다. 그리고 그 공백은 한 무고한 사람의 인생으로 메워졌다. 2019년의 DNA 재감정은 마침내 진범의 이름을 찾아냈지만, 동시에 그동안 누군가 대신 치른 억울한 대가를 세상에 드러내고 말았다. 사건은 '범인을 찾았다'는 안도감보다 '누군가 대신 벌을 받았다'는 사실의 무게로 더 오래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