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10. 27. AM 10:41:47 · 조회 0
2016년 10월 24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JTBC 뉴스에서 '최순실 PC파일 입수'라는 제목의 보도를 마주했다. 그날 JTBC는 여덟 건의 단독 기사를 한꺼번에 내놓았고, 그중 하나는 대통령 연설문이 발표되기 전에 민간인 최순실씨가 그 연설문을 먼저 받아봤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하나의 질문을 따라간다. 그날 저녁의 보도는 어떻게 광장까지 이어졌고, 그 시작이었다는 태블릿PC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화면에는 드레스덴 연설문 이야기가 나왔다. 2014년 3월 28일 발표된 이른바 '통일대박론' 연설문이 하루 전인 3월 27일 최씨의 컴퓨터에서 열람됐고,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실제 연설에서 빠지거나 바뀐 대목이라는 것이었다. 공식 직함이 없는 민간인이 국가 정상의 연설문을 먼저 읽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런데 보도는 열람 날짜와 연설문에 남은 붉은 표시까지 구체적으로 짚고 있었다.
JTBC의 설명에 따르면 발단은 엿새 전인 10월 18일이었다. 취재팀이 건물관리인과 함께 서울 강남 신사동의 한 사무실에 들어갔다. 최씨의 차명회사로 추적된 더블루K가 쓰던 곳인데, 9월에 이미 이사를 나가 책상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 책상에서 월세 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 해외 협회와의 계약서, 그리고 전원이 꺼진 태블릿PC 한 대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사무실까지 가게 된 경위도 JTBC는 설명했다. 10월 3일 특별취재팀을 꾸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고영태 더블루K 이사를 차례로 만났고, 거기서 나온 업체명을 단서로 최씨의 차명회사를 쫓았다. 독일 기업 관련 보도와 기업 사이트에서 같은 주소가 확인된 것이 신사동 사무실로 이어졌다. 기기는 2012년에서 2014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였고, 충전케이블을 구하기 어려워 취재진이 직접 샀다.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에는 JTBC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기기를 가져와 정밀 분석했고, 첫 보도가 나간 10월 24일 검찰에 제출했다는 것이 JTBC의 설명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JTBC 쪽 설명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경위도, 기기를 발견한 순간도 보도한 쪽의 말로만 전해졌다. 훗날의 공방은 상당 부분 이 대목에서 출발한다. 반면 다음 날 벌어진 일은 누구의 설명도 거칠 필요가 없었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도가 나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대통령은 최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을 도움 받은 적이 있다
보도의 핵심 가운데 일부를 대통령 본인이 하루 만에 인정한 셈이었다. 후속 보도는 이어졌다. JTBC가 확보한 파일은 200여 건이었고, 그중 연설문이나 공식 발언 형태가 44개였다. 대선 후보 시절 유세문부터 취임 후 연설문, 당선인 소감문까지 섞여 있었다. 국무회의 자료와 청와대 인사 관련 문건도 사전에 전달된 정황이 보도됐고, 최씨가 파일을 연 시점이 대통령의 실제 발언보다 길게는 사흘 앞선 경우도 있었다.
사과 나흘 뒤인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도심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은 3만 명, 경찰은 1만 2000명으로 추산했다. 다음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에서만 20만 명이 모였고, 경찰 추산은 4만 7000명이었다. 집계는 이렇게 엇갈렸지만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아도 참가자는 늘고 있었다.
11월 12일 3차 집회에서는 광화문 일대에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경찰 추산 26만 명이 모였다. 두 숫자는 네 배 가까이 차이 났다. 이날 저녁 6시 40분쯤 시위대 1000명가량이 청와대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청운동 새마을금고 앞까지 행진해 20분 가까이 앉아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다가, 경찰의 요청에 따라 경복궁역 쪽으로 돌아갔다. 청와대 코앞까지 간 첫 행진이었다.
토요일마다 집회가 이어졌다. 12월 3일 6차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 170만 명과 지방 62만 명, 합쳐서 232만 명이 모였다. 경찰 추산은 서울 32만 명, 지방 10만 9000명이었다. 이번에도 집계는 달랐고, 주최 측 기준으로는 집회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12월 9일,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다. 재적 300명 중 299명이 투표했고,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가결됐다. 가결이 선포되자 국회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본회의장에서 표결을 지켜보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눈물을 보였다. 대통령의 권한은 그 즉시 정지됐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탄핵 사유에는 청와대 문건 유출과 최씨의 국정 개입,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 세월호 참사 관련 직무 유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해를 넘겨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2017년 3월 10일, 17차례의 변론 끝에 헌재가 선고를 내렸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세월호 관련 혐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3월 31일 구속됐고, 1심 징역 24년, 2심 징역 25년, 파기환송심 징역 20년을 거쳐 2021년 1월 14일 대법원이 확정했다. 앞서 공천개입 혐의로 확정된 징역 2년을 합쳐 총 22년이었다. 최씨도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1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라는 보도가 2022년 2월에 나왔다.
그러나 태블릿PC를 둘러싼 질문은 탄핵과 판결로도 끝나지 않았다. 2017년 9월 19일, 검찰의 포렌식 보고서가 재판에 제출됐다. 작성일은 2016년 10월 25일, 분량은 689쪽이었다. 이어 그해 10월 8일에는 신혜원씨가 태블릿PC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고, 10월 11일 국회 토론회에서는 조작설이 제기됐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까지 된 뒤에도 기기 자체의 소유와 사용을 둘러싼 다툼은 이어졌다.
입수 경위를 둘러싼 법적 공방도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갔던 JTBC 김필준 기자가 특수절도 혐의로 고발됐다. 건물관리인의 협조를 받아 들어갔고, 입수한 기기를 곧바로 검찰에 제출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불법 침입과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2018년 3월 서울고등검찰청은 이 사건의 재기수사를 명령했다.
2022년 2월 18일에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가 최서원(최순실)씨가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검찰이 보관 중인 태블릿PC 한 대와 특검이 가진 한 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거나 내용을 바꾸거나 폐기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이었다. 최씨는 그 기기를 소유하거나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이 주장이 형사책임을 피하기 위한 거짓 진술일 수 있다고 봤다. 잠금 해제 패턴이 최씨의 휴대전화와 같다는 점, 최씨가 운영하던 사무실에서 발견됐다는 점을 근거로 최씨가 소유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결정은 본안 판단이 나올 때까지 압수물을 지금 상태로 두라는 조치일 뿐이었다. 기기를 최씨에게 돌려줄지는 추가 변론과 증거조사를 거쳐 따로 판단할 문제로 남았다.
2016년 10월 18일 텅 빈 사무실의 책상 위에서 발견됐다는 그 기기는, 보도 6년이 지난 2022년에도 압수물로 보관된 채 법정 다툼의 한복판에 있었다.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 확정판결이 모두 끝난 뒤에도 입수 경위와 소유권 공방은 법원의 책상 위에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 앞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첫 조각만은, 끝내 다 설명되지 않은 채였다.
10월 24일 JTBC가 파일 200여 건 중 연설문·공식발언 44개 보도, 드레스덴 연설문 사전 열람(3/27 열람, 3/28 발표), 10/25 대통령 사과 발언 정리.
JTBC가 밝힌 입수 경위: 10/3 특별취재팀, 10/18 더블루K 신사동 사무실 책상에서 발견, 10/24 검찰 제출. JTBC 측 주장을 전한 기사.
2017.9.19 포렌식 보고서(689쪽, 작성 2016.10.25) 재판 제출, 10.8 신혜원 기자회견, 10.11 국회 토론회 조작설 제기.
2016.12.9 탄핵소추안 표결: 재적 300, 투표 299, 찬성 234, 반대 56, 기권 2, 무효 7.
6차 촛불집회 232만 명, 2017.3.10 헌재 파면, 1심 24년·2심 25년·파기환송심 20년, 2021.1.14 대법원 확정(공천개입 2년 합산 22년).
JTBC 기자 특수절도 고발에 불기소 처분, 서울고검 재기수사 명령(2018년 3월).
2022.2.18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 가처분 인용, 소유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반환 여부는 추가 변론·증거조사 필요.
촛불집회 차수별 주최 측·경찰 추산: 1차(10/29) 3만·1.2만, 3차(11/12) 100만·26만, 6차 서울 170만+지방 62만·서울 32만+지방 10.9만.
위 참조 기사들을 바탕으로 다시윤슬이 다시 정리해서 쓴 글입니다. 미제 사건이나 확정되지 않은 혐의는 단정하지 않고 서술했습니다.
11/12 광화문 일대 주최 측 100만·경찰 26만, 오후 6시 40분쯤 약 1000명이 청운동 새마을금고 앞(청와대 약 200m)까지 행진해 20분가량 구호 후 경찰 요청으로 되돌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