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11. 4. PM 3:51:53 · 조회 1
기자회견이 열린 2005년 11월 24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공식 직책에서 모두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였다.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 자리도 내려놓는다고 했다.
겉으로 보면 한 시대가 끝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그 뒤 며칠 동안 인터넷에는 응원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황우석 박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며칠 사이 회원이 약 3만 4천 명으로 불어났다.
연구를 돕겠다며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서울 거리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이 응원 집회에 나섰다.
반대편의 풍경은 달랐다. 난자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에는 시청 중지 움직임이 일었다. 광고주 대부분이 광고를 끊으면서 이 프로그램의 광고 자리는 비어 갔다.
사퇴의 이유는 난자였다. 기자회견장에서 황 교수는 연구원 여성 2명에게서 난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20여 명의 여성에게는 돈을 주고 난자를 받았고, 이를 숨겨 왔다는 점도 인정했다. 윤리지침을 어겼다고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한 사람 앞에 응원의 숫자가 쌓여 가고 있었다.
이 글이 따라가는 질문은 하나다. 그가 환자의 세포로 만들었다고 발표한 줄기세포는 어디까지 진짜였을까.
먼저 이 연구가 왜 그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여졌는지부터 보자.
줄기세포는 몸의 여러 부분으로 자랄 수 있는 '씨앗 세포'다. 환자 본인의 세포로 이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면, 거부반응 없는 치료의 길이 열린다는 기대가 따랐다. 연구팀이 내세운 방법이 '체세포 복제'였다. 환자 몸의 세포를 난자에 넣어 줄기세포를 얻는 방식이다.
2004년 2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황우석 연구팀이 사람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인터넷 속보로 알렸다. 논문은 같은 해 3월 12일자 지면에 실렸다.
공동 저자는 15명이었다. 논문은 난자 242개로 줄기세포주 1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줄기세포주란 한 번 만들어 계속 길러 낼 수 있는 줄기세포 한 계통을 말한다.
난자 242개가 들어가 줄기세포 하나가 나왔다. 이 숫자는 나중에 다시 등장한다.
그해 황 교수는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상금은 3억 원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한국 연구팀이 해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래도 의혹은 일찍부터 있었다. 2004년 5월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는 연구팀이 대학원생 연구원 두 명의 난자를 썼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황 교수는 이를 부인했다.
정부는 2005년 1월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공식 승인했다.
2005년 5월에는 두 번째 논문이 나왔다. 나이와 성별이 다른 환자들의 세포로 맞춤형 줄기세포 11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공동 저자는 25명이었고, 난자는 185개를 썼다고 적혀 있었다. 논문은 6월 17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다.
복제양 돌리를 만든 이언 윌머트 박사가 루게릭병 치료기술을 함께 개발하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8월 3일에는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가 공개됐다. 아프간하운드 '타이'의 세포로 복제했다고 했다. 줄기세포와는 별개의 성과였다.
균열은 난자에서 시작됐다.
2005년 10월, MBC 'PD수첩' 제작진이 피츠버그대 소속 김선종 연구원에게서 난자 문제와 논문 조작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보도가 있다.
11월 12일에는 미국인 공동연구자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가 협력을 끊었다. 연구 자체는 건실하다고 하면서도, 윤리적 문제가 이유였다.
11월 21일에는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사례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튿날 PD수첩이 황 교수 연구의 윤리 문제를 다룬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이틀 뒤가 서두의 11월 24일이다.
이후 논란은 취재 방식으로 옮겨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월 2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MBC 보도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다만 광고 중단 움직임은 지나치며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정부 당국은 황 박사에게 범법 혐의가 없다며 연구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었다.
11월 29일로 잡혔던 PD수첩 후속 방송은 나가지 못했다.
12월 4일 YTN이 PD수첩의 취재 방식을 문제 삼는 보도를 했다. 이튿날 MBC는 취재진이 황 박사 동료들을 위협적인 방식으로 취재에 응하게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프로그램 방영도 접었다.
12월 6일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연구 성과를 둘러싼 논란이 이쯤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여당과 야당은 나란히 황 박사를 지지한다고 했다.
잠적했던 황 박사는 12월 7일 수면장애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졌다.
이어 병원에서는 쾌유를 비는 촛불 기도회가 열렸다. 한쪽에서는 그렇게 촛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12월 첫 주, 다른 쪽에서는 논문 속 사진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의혹의 초점이 난자에서 논문 자체로 옮겨 간 것도 바로 그 12월 첫 주였다.
12월 5일 과학자 커뮤니티 BRIC 게시판에 논문 속 줄기세포 사진이 서로 겹친다는 글이 올라왔다. 황 교수팀은 실수라고 해명했다.
이튿날 언론사 프레시안이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DNA 지문은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 신분증 같은 것이다. 8일에는 줄기세포와 환자 세포의 DNA 지문이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12월 9일 서울대 소장 교수들은 정운찬 총장에게 검증을 건의했다. 10일에는 중복 사진이 추가로 발견됐다.
황 교수팀은 11일 '황우석 죽이기 4대 의혹'이라는 반박문을 냈다. 같은 날 황 교수는 서울대 연구처장에게 논문 재검증을 요청했다.
14일에는 섀튼 교수가 공저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빼고 논문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15일에는 노성일 이사장이 11개 줄기세포 대부분이 지금 존재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9개 정도는 가짜라고 주장했다.
이튿날인 12월 16일 황 교수는 논문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줄기세포와 원천기술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있는 줄기세포는 미즈메디병원의 것이라며, 줄기세포가 바꿔치기됐을 가능성도 처음으로 꺼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12월 하순에 중간 결과를 내놓았다.
12월 29일, 황 교수가 내세운 주장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황 박사팀 줄기세포의 DNA 지문이 환자 세포의 DN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줄기세포가 없었다는 잠정 결론이었다.
응원 모임 회원이 불어나던 때로부터 한 달 남짓. 환호하던 자리 밑에서 연구의 핵심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해가 바뀐 2006년 1월 3일, PD수첩은 약 한 달 만에 '줄기세포 신화의 진실'로 방송을 재개한다고 예고했다.
프로그램은 먼저 취재윤리를 어긴 점을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황 교수가 11월 24일에 설명한 연구원의 난자 제공이 자발적이었다는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예고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2004년과 2005년 연구에 여성 86명에게서 난자 1,600여 개가 제공됐다. 그중 약 20퍼센트가 난소 과자극 증후군 같은 후유증을 겪었다.
논문에 적힌 난자는 427개(2004년 242개, 2005년 185개)였다. 실제는 그 약 4배였다는 뜻이다.
논문 속 숫자와 실험실 안의 숫자가 이렇게 벌어져 있었다. 그 틈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결과였다. 중간 발표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없다는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와 복제 개는 어떻게 판정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2006년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해 겨울을 달군 열기가 한 문장에 걸려 있었다.
조사위원회는 황우석 교수팀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만들었다는 근거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사이언스 논문에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11종이 사진과 숫자로 정리돼 있었다. 조사위가 하나씩 확인해 보니, 실제로 있던 줄기세포는 2개였다. 그 2개로 11개분의 데이터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 2개조차 체세포 복제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일반 수정란에서 얻은 줄기세포였다.
DNA 지문, 줄기세포가 여러 조직으로 자란다는 것을 보이는 사진, 세포 유형 검사, 염색체 검사 데이터가 모두 조작됐다는 것이 발표 내용이었다. 줄기세포가 진짜임을 보여 주는 실험의 기록 자체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4년 논문도 무사하지 못했다.
앞에서 나온 242라는 숫자가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난자 242개로 줄기세포 1개를 만들었다는 바로 그 논문이다. 조사위는 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도 없다고 발표했다. 논문에 실린 1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은 난자를 준 사람의 지문과 맞지 않았다. 논문의 세포 사진 가운데 일부는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 사진이라는 지적도 사실로 확인됐다.
난자 숫자도 달랐다. 생명윤리법은 2005년 1월부터 시행됐다. 조사위에 따르면 2002년 1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4개 병원에서 129명으로부터 난자 2,061개가 채취돼 황 교수팀에 제공됐다.
여기서 숫자를 헷갈리기 쉽다. 129명은 난자를 내놓은 여성의 수이고, 2,061개는 난자의 개수다. 난자는 한 번에 여러 개를 채취하기 때문에 사람 수보다 개수가 훨씬 많다. 나누어 보면 한 사람당 평균 16개꼴이다.
2005년 논문은 난자를 185개 썼다고 적었다. 그런데 실험노트에는 2004년 9월 17일부터 2005년 2월 7일 사이에만 최소 273개가 쓰인 것으로 나왔다.
2004년 논문과 관련해서도 조사위는 이렇게 밝혔다. 연구원 진술에 따르면 황 교수가 동행해 승인한 가운데 2003년 3월 10일 난자 채취 시술이 이뤄졌다. 황 교수는 그동안 당시에는 몰랐다고 말해 왔다.
난자를 몇 개 썼는지는 집계한 기관마다 숫자가 다르게 남았다.
서울대 조사위는 4개 병원, 129명, 2,061개로 집계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002년 1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4개 기관에서 119명이 139회에 걸쳐 모두 2,221개를 제공했고, 그중 66명이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기소 내용에는 122명에게서 난자 2,236개를 받은 것으로 적혔다고 한 칼럼은 전한다.
기관마다 조사 기간과 기준이 달라 숫자는 조금씩 어긋난다. 그래도 어느 집계로 봐도 난자 제공은 2천 개를 넘는 규모였다.
반대로 진짜로 확인된 것도 있었다.
조사위는 27종의 표지자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스너피는 타이의 세포로 복제된 개가 맞다고 판정했다. 줄기세포 논문은 조작으로 판정됐지만, 복제 개는 진짜였다.
조사위는 데이터를 조작해 논문을 쓴 행위가 과학계와 일반 대중을 모두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며칠 뒤 사이언스는 2004년과 2005년 두 논문을 공식 철회했다. 철회란 잡지가 "이 논문은 없던 것으로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잡지에 실렸던 두 편이 지면에서 지워졌다.
검찰은 1월 12일 황 교수의 자택과 미즈메디병원 등 26곳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날 황 교수는 공개 사과를 했다. 하지만 조작을 인정하지는 않았고, 연구를 방해하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일부 줄기세포가 바꿔치기됐을 가능성도 내세웠다. 조사위는 바꿔치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대는 그해 황 교수를 파면했다.
2006년 5월 12일,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황 박사를 사기, 업무상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연구원과 교수 등 모두 6명이 기소됐다.
수사 결과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줄기세포 '섞어심기'였다. 검찰은 김선종 연구원이 2004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서울대 줄기세포 배양용기에 몰래 섞어 넣었다고 밝혔다.
거짓말탐지기까지 썼는데도 황 박사와 공모한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난자와 관련해서는 이런 혐의가 적용됐다. 생명윤리법이 시행된 뒤인 2005년 1월부터 8월 사이, 한나산부인과 환자 25명에게 난자를 받는 대가로 3,800여만 원 상당의 불임시술비 등을 줬다는 것이다.
재판은 8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사이 사람들의 관심은 조금씩 식어 갔다.
2009년 10월 26일 서울중앙지법은 황 박사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는 징역형을 정해 두되, 정해진 기간 동안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감옥에 가지 않는 제도다. 난자를 불법으로 사고판 일과 연구비 횡령은 유죄였다. 줄기세포가 곧 실용화될 것처럼 부풀려 SK 등에서 연구비를 받았다는 사기 혐의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황 박사의 줄기세포 전망 발언이 개인적 전망이었고 일부러 부풀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2010년 12월 항소심은 형을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낮췄다.
2014년 2월 27일 대법원 2부는 이 판결을 확정했다.
연구비 횡령으로는 신산업전략연구원 연구비 4억 8,700만 원을 차명 계좌에 숨겨 쓴 일이 유죄로 인정됐다. 허위 세금계산서로 정부 연구비 1억 9,266만 원을 빼돌린 부분 등도 유죄였다. SK와 농협 연구비 관련 사기 혐의는 무죄가 유지됐다.
여기서 짚어 둘 점이 있다. 형사 재판은 논란의 핵심이던 줄기세포의 실제 존재 여부를 판단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같은 날 대법원 1부는 서울대 파면 처분을 둘러싼 소송에도 결론을 냈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2010년 7월 22일 서울대가 옳다고 봤다. 하지만 2심 서울고법은 2011년 11월 3일 논문 조작은 인정하면서도 파면은 지나치다며 처분을 취소했다. 조작의 경위나 증거가 밝혀지기 전에 징계가 이뤄졌다는 점도 황 교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황 교수가 총책임자로서 연구원 지휘와 감독을 소홀히 했고, 실험 데이터 조작과 논문 허위 기재를 직접 지시했다고 봤다. 파면 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사건은 2026년 7월에 다시 뉴스가 됐다.
정부는 7월 14일 황우석 전 교수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취소하는 안을 대통령 재가로 확정했다. 2004년 상을 받은 지 22년 만이었다. 취소 사유는 2004년과 2005년 논문 조작이었다.
이미 2006년에 정부는 황 교수팀에 준 훈장과 포상을 박탈하기로 했다. 제1호 최고과학자 지위와 과학기술훈장 창조장도 그때 박탈된 상태였다.
정부는 2020년에도 취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황 전 교수가 사전 통지와 의견 제출 기회를 받지 못했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취소 사유가 아니라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처분을 취소했고, 대법원이 2023년 4월 이를 확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의견 청취 절차를 보완해 3월에 다시 처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행정안전부가 7월 14일 재가를 요청했고, 같은 날 재가가 이뤄졌다.
논란이 남은 부분도 적지 않다.
조사위는 2006년 4월 5일, 1번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졌다는 1월 보고서의 판단을 정정했다.
한 칼럼에 따르면 2008년 8월 2일 보건복지가족부는 재판을 받고 있던 황 교수의 배아 연구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연구 책임자로서의 자격이 문제가 됐다.
황 교수가 대표인 에이치바이온은 이후 1번 줄기세포주 NT-1과 관련한 특허를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2011년 7월 캐나다에 이어 2014년 2월 미국 특허청도 물질특허와 제조방법 특허를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보도에서 업계 관계자는 NT-1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법원과 서울대 조사위가 확인한 것과 황 교수 측이 이어 온 주장은 지금도 평행선에 가깝다.
여성 129명이 황 교수팀에 난자 2,061개를 제공했다.
그러나 인정받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었다.
공개된 보도와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윤슬이 다시 정리해서 쓴 글입니다. 미제 사건이나 확정되지 않은 혐의는 단정하지 않고 서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