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9. 17. AM 11:47:14 · 조회 1
2008년 9월 15일 아침, 뉴욕 맨해튼 7번가의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 앞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하나둘 건물을 나서는데, 손에는 서류 가방 대신 종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액자에 든 가족사진, 머그컵, 명패 같은 개인 물건들을 담은 상자였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몰려들어 그 장면을 찍었고, 다음 날 전 세계 신문 1면에는 상자를 든 채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리먼 직원들의 사진이 실렸다. 158년 역사를 가진, 한때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투자은행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불과 며칠 뒤, 리먼보다 훨씬 큰 금융회사인 보험사 AIG가 위기에 처하자 미국 정부는 곧바로 수백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해 살려냈다. 왜 리먼은 구하지 않고 AIG는 구했을까. 그 질문은 지금까지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이, 세계 경제를 이후 몇 년간 짓누른 금융위기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됐다는 시각이 많다. 사태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의 부동산 시장으로 이어진다. 저금리 기조 속에 집값이 계속 오르자 은행들은 상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줬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은행들은 이 대출채권을 잘게 쪼개고 섞어서 복잡한 금융상품으로 재포장한 뒤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런 상품 상당수에 최고 등급을 매겼고, 연기금부터 유럽의 지방은행까지 이 상품을 사들였다. 겉보기엔 안전한 투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갚을 능력이 의심스러운 대출들이 그 안에 촘촘히 얽혀 있었다. 2006년을 정점으로 미국 집값이 꺾이기 시작하자 균열이 드러났다.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 대출을 기초로 만든 금융상품의 가치도 함께 흔들렸다. 2007년 여름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몇몇 헤지펀드가 손실을 이유로 환매를 중단했고, 은행 간 단기 자금시장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그리고 2008년 3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사실상 파산 직전까지 갔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는 급히 개입해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헐값에 인수하도록 주선했다. 시장은 한숨을 돌렸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베어스턴스 사태 이후 시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음 후보로 옮겨갔다. 리먼 브라더스였다. 리먼 역시 부동산 관련 자산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었고, 손실 규모에 대한 소문이 여름 내내 월가를 떠돌았다. 리먼 경영진은 자본을 확충하고 자산을 매각하며 버티려 했지만, 시장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회사의 주가는 몇 달 사이 큰 폭으로 떨어졌고, 신용부도스와프, 즉 리먼이 파산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 성격의 상품 가격은 치솟았다. 이는 시장이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9월 초가 되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리먼은 한국산업은행 등 외부 투자자와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고, 결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나서 주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을 소집했다. 9월 12일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이 회의는 주말 내내 이어졌다. 목표는 하나, 리먼을 인수할 곳을 찾아 파산을 막는 것이었다. 유력한 인수 후보는 두 곳으로 좁혀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영국의 바클레이스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협상은 몇 번이고 뒤집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리먼의 부실자산에 대해 정부의 보증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협상 테이블에서 조용히 발을 뺐다. 그리고 곧바로 방향을 틀어 또 다른 부실 위기의 회사, 메릴린치 인수로 눈을 돌렸다. 남은 것은 바클레이스뿐이었다. 실무진은 밤새 실사를 진행하며 인수 조건을 다듬었고, 한때는 거래가 성사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요일 밤 늦게 영국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영국 규제 절차상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 규모의 인수를 승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협상은 그렇게 무산됐다. 밤사이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재무부는 리먼을 살릴 마지막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 투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폴슨 재무장관을 비롯한 정책 당국자들은 이미 베어스턴스 구제로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었던 터라, 또 한 번 세금을 투입해 대형 금융회사를 살리는 데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장도 이미 리먼의 위기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 있으리라는 판단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9월 15일 이른 아침, 리먼 브라더스는 미국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채 규모는 약 6천억 달러 안팎으로 알려지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기록됐다. 시장은 그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뉴욕증시는 폭락했고, 리먼과 거래해온 전 세계 금융회사들은 서로 누가 얼마나 물려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시장을 더 얼어붙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최대 보험사 중 하나였던 AIG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AIG는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각종 파생상품에 사실상 보증을 서주는 신용부도스와프를 대규모로 팔아온 회사였다. 만약 AIG마저 무너지면 그 보증을 믿고 거래해온 은행들이 도미노처럼 연쇄 부실에 빠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주저하지 않았다. 연준은 85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을 결정하며 AIG의 지분 상당수를 사실상 국유화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붙잡았다. 리먼은 놓아두고 AIG는 붙잡은 이 상반된 결정을 두고,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진다. 당시 정책 당국자들은 리먼과 달리 AIG는 담보로 잡을 만한 우량 자산이 있었고, 무엇보다 AIG의 붕괴가 훨씬 더 광범위하고 즉각적인 연쇄 파급을 일으킬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판하는 쪽에서는 리먼을 살릴 방법이 정말 없었는지, 혹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훗날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나 폴슨 재무장관도 회고록 등을 통해 리먼을 구할 법적, 실무적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이 결정이 사태를 더 키웠다는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느 쪽 해석이 맞든, 리먼의 파산이 몰고 온 충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리먼에 투자했던 한 대형 머니마켓펀드가 손실을 내며 원금 손실 없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원칙, 이른바 '1달러가 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초단기 자금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고, 기업들이 일상적인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상업어음 시장까지 얼어붙었다. 은행들은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조차 꺼렸다. 신용의 흐름 자체가 멈춰버린 것이다. 이 여파는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로 순식간에 퍼졌다. 아이슬란드의 주요 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졌고, 영국과 유럽 대륙의 은행들도 정부 구제를 받아야 했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시장에서는 외국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가며 통화 가치가 급락했다. 미국 정부는 뒤늦게라도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9월 하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이른바 TARP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지만 첫 표결에서는 부결됐다. 구제금융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그만큼 컸다. 결국 수정안이 통과되며 7천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금융회사들의 자본 확충에 투입됐다. 이후 몇 달간 실물경제로도 충격이 전이돼 기업들의 도산과 대규모 해고가 이어졌고, 미국 실업률은 이듬해까지 계속 치솟았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을 압류당한 가구도 상당수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로 불리며 훗날 '대침체'라는 이름으로 기록됐다. 이 위기는 이후 금융 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2010년 미국에서는 도드-프랭크법이 제정돼 은행의 위험한 투자 행위를 제한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새로 만들어졌다. 국제적으로도 은행이 위기에 대비해 쌓아야 할 자본 규모를 강화하는 새로운 기준이 마련됐다. 리먼 브라더스라는 이름은 이제 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다. 복잡하게 얽힌 금융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결정이 얼마나 넓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정의 순간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지금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해 9월, 상자를 들고 건물을 나서던 직원들의 표정은 어쩌면 그 이후 몇 년간 세계 경제가 마주하게 될 표정을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